임지_2010/MAY

가끔은

minial 2010. 5. 21. 12:30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었다.
아침부터 감성모드로 접어들어 하루 종일 몽롱한 채로 지내게 되는 날.
어제는 아침부터 공부모드로 접어들어 온라인강의를 5개나 들었었다.

생각해보니, 베트남에 온 후 감정이라는 것을 써본 적 이 없는 것 같다.
감정보다 의무와 당위성이, 그리고 그것들을 이루어낼 방편들의 효율성에 대한 평가가 앞섰다. 
사건에 대한 반응은 있었지만, 감정은 있지 않았다.
결국, 부적절한 반응만 양산하고 있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평균치보다 크거나 작거나 더뎠다.
감정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분석과 비평만이 득실댄다.
그것은 타인과 나 자신에게 동일한 크기로 작용한다.
불씨만 닿으면 바로 활활 타버릴 마른 장작이 되었다.
어떤 불꽃이든 당겨지면 지금 바로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태울 수 있다.
실은, 불씨는 내 안에서 발화될 수 있고, 그럼, 나는 나와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이다.

오늘의 감성모드는 이런 까칠하고 바싹 마른 마음에 조금의 습기를 주는 듯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금방 말라버릴 정도의 습기일지라도.

좋아했던 노래들을 들어보는게 얼마만인지. 시간이 있어도 음악을 듣고자 하는 여유가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나를 들볶고 주변을 탓하고 있다.
어제는 사무실로 계단을 오르다 반복적인 패턴의 이미지 사이에서 갑작스러운 각성을 얻었다.
다시금 나와 내가 하는 일을 동일시하고 있는 나.
역할이라는 것에 함몰되어 다람쥐 쳇바퀴도는 생활을 하는 현대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다시, 주어진 역할이 있는 상황이 되고 보니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알았으니 됬다. 현재를 볼 수 있는 색다른 시점을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주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온다.
아주 오지 않게 되는 일이 없도록,  오늘 하루 잘 대접해서 보내야겠다.